음식 진공포장해 뜨거운 물에 익혀 맛·향 보존되고 기름 안 쓰니 건강에 좋고
[조선일보 김성윤, 김승완 기자]
진공포장기. 요즘 홈쇼핑에서 대박 난 상품이다. 그런데 진공포장기를 조리도구로 이용하는 요리사들이 있다. 그것도 보통 요리사들이 아니다. ‘모차르트, 피카소, 달리가 한데 합쳐져 다시 태어났다’고 평가받는 스페인 천재 요리사 페란 아드리아(Ferran Adria)를 비롯, 뉴욕 최고급 레스토랑 ‘다니엘’ 총주방장 겸 주인 다니엘 불루드(Daniel Boulud), 시카고 최고 요리사 찰리 트로터(Charlie Troter) 등. 세계 미각을 선도하는 요리 거장들이다.
이들이 진공포장기를 이용하는 이유는 ‘맛’과 ‘건강’이다. 음식을 찌거나 삶으면 지니고 있는 풍미가 빠져나와 맛이 떨어진다. 기름에 튀기거나 볶으면 이러한 손실을 줄일 수 있지만, 건강에 덜 좋다.
음식을 진공포장한 채 뜨거운 물에 익히면 육즙 손실이 없다. 맛과 향이 보존된다. 기름을 쓰지 않아도 된다. 양념이 음식에 더 깊이 배어든다. 진공상태가 음식재료들간 삼투압 작용을 강화하기 때문이다. 음식의 질감을 바꿔놓기도 한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진공포장 요리법을 보도하면서 “진공포장해 숙성시킨 수박은 쇠고기와 비슷한 질감으로 바뀐다”고 전했다.
장점을 두루 갖춘 ‘진공포장 요리법’을 외국 요리사들만 사용한다면 너무 아깝지 않나? 그래서 실험해봤다. 진공포장기를 우리 식생활에는 얼마나 적용할 수 있을지. 실험에는 시중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가정용 진공포장기를 사용했다. 외국 요리사들처럼 압력과 온도를 입맛대로 조절 가능한 전문가용 진공포장기를 사용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비싼데다가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진공포장용 비닐팩을 가열하면 유해물질이 배출되지 않을까 우려됐으나, 진공포장기 ‘푸드 가드’를 만드는 롤팩사는 “비닐팩은 미국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유해물질이 없다고 승인 받은 5가지 소재로 만들어진다”는 대답했다.
이번 실험에는 케이터링 전문업체 ‘탑테이블’ 김은영·최선휘·김병규씨, 그리고 ‘스마트키친’ 요리사 안현민씨가 참여했다.
● 실험1: 채소
당근, 버섯, 무를 얇게 썰어 진공포장했다. 우묵한 프라이팬에 물을 반쯤 받아 섭씨 60도로 데워 진공포장한 채소들을 집어넣었다. 섭씨 60도는 손을 물에 넣을 수 있으나 뜨거워서 금방 빼내야 하는 정도의 온도다. 10분쯤 익히자 채소가 살짝 무른 듯한 느낌이 났다. 채소를 물에서 꺼내 열기가 가신 뒤 가위로 비닐팩을 뜯었다. 삶거나 데쳤을 때와는 비교되지 않을만큼 채소 자체 향이 강했다. 채소를 씹어보니 물기 없이 꼬들꼬들했다.
● 실험2: 과일
‘수박을 진공포장하면 질감이 고기처럼 바뀐다’니, 신기했다. 수박을 구할 수 없어 멜론으로 실험했다.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전문가용과 달리, 가정용 진공포장기는 물기가 많은 재료를 진공시키지 못했다. 최선의 방법은 공기를 최대한 뽑아낸 후 비닐팩을 밀봉하는 것이었다. (진공포장기에는 ‘진공포장’과 공기를 빼내지 않고 봉합하는 ‘밀봉포장’ 두 가지 모드가 있다.) 감, 사과, 배처럼 딱딱한 과일은 진공포장하기 어렵지 않았다.
● 실험3: 고기
물기가 많으면 진공포장하기 어렵다는 점을 알아낸 뒤여서 질펀하게 양념하는 불고기나 갈비는 시도하지 않았다. 대신 쇠고기에 로즈마리를 얹어 진공포장해 섭씨 60도 물에 익혔다. 30분 후 팩을 뜯자 로즈마리향이 강하게 흘러나왔다. 고기 누린내는 없었으나, 너무 익어 질겼다. 두 번째 실험에서는 15분 후 꺼냈다. 로즈마리향이 잘 배었으면서 고기가 연하게 익었다. 수육을 만들 때 적용할 수 있겠다고 실험팀은 결론내렸다.
● 실험4: 생선·갑각류
갈치 토막에 칼집을 내고 생강과 고추를 얹고 간장과 맛술, 설탕을 섞은 양념장을 살짝 뿌려 진공포장했다. 섭씨 60도 물에 30분 익혔다. 육즙이 빠지지 않았고, 생강과 양념장이 잘 배어 비린내가 거의 없었다. 또 진공포장을 했기 때문에 갈치살이 흐트러지지 않고 원래 형태를 유지했다. 새우는 소금을 살짝 뿌려 진공포장해 7분간 익혔다. 소금구이처럼 향이 강하면서도 찐 것처럼 촉촉했다. 결과가 가장 만족스런 실험이었다.
● 과일샐러드
재료: 멜론 150g, 배 150g, 감 120g, 무 120g, 양파 100g, 소금·후추·딜(향신료) 약간
드레싱재료: 올리브오일 80㎖, 라임즙 40㎖, 겨자씨 1작은술, 소금·후추 약간
① 멜론, 배, 감, 무, 양파를 얇게 썬다. 양파를 제외한 나머지 재료들을 따로따로 진공포장한다.
② 진공포장한 재료들을 섭씨 60도 물에 넣어 10분 익힌다. 단, 무는 20분 익힌다.
③ 믹싱볼에 올리브오일과 라임주스, 겨자씨, 소금, 후추를 잘 섞어 드레싱을 만든다.
④ 익힌 재료들을 드레싱에 골고루 버무린다. 접시에 보기 좋게 담고 딜을 얹어 장식한다.
맛&멋 포인트
- 라임즙을 구하기 어려우면 레몬즙이나 식초로 대체해도 된다.
- 딜이 없으면 얹지 않아도 상관없다.
●채소 카파치오
재료: 무 100g, 당근 100g, 표고버섯 80g
딥핑재료: 올리브오일 80㎖, 레몬즙 40㎖, 오렌지주스 20㎖, 잣 30g, 간장 1큰술, 꿀 1작은술, 검은후추 약간
① 무, 당근, 표고버섯을 진공포장한다.
② 섭씨 60도 물에 진공포장한 무 20분, 당근 15분, 표고버섯은 10분 익힌다.
③ 올리브오일, 레몬즙, 오렌지주스, 잣, 간장, 꿀, 후추를 잘 섞는다.
④ 접시에 익힌 채소를 예쁘게 담는다. 작은 종지에 딥핑을 담아 곁들여 낸다.
(글=김성윤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gourmet.chosun.com])
(사진=조선영상미디어 김승완기자 wanfoto@chosun.com )
(제품협찬=롤팩 ‘푸드 가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