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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오헤어 아시죠

폴미쇼핑 2005. 9. 14. 14:48

준오헤어 아시죠?  [2005-09-14]  연구대상


지난 5월 말 인하대 대강당. 700여명의 학생이 모인 가운데 여성 기업인 한 명이 강단에 올랐다. 그는 2시간 동안 자신의 창업 스토리를 생생하게 들려주었다. 간간이 “내가 좀 푼수 같죠”라는 농담을 할 땐 웃음꽃이 터졌다.

그는 “리더십요, 먼저 리더가 행동하는 거지요. 아랫사람 보고 ‘이렇게 해주었으면’하고 바라는 건 의미가 없어요. 반드시 리더가 먼저 액션을 취해야 아래에서도 움직입니다. 저는 그것이 리더십의 근본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강연이 끝나고 질문이 쏟아졌다.

“경영에서 가장 힘든 점은 뭐예요?” 그는 “역시 경영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사람을 다루는 일”이라며 “그것만 잘되면 경영은 성공”이라고 대답했다.

요즘 각 대학이나 기업으로부터 인기강사로 초빙받고 있는 이 여성 기업인은 바로 국내 최대의 기업형 미용실 체인인 ㈜준오헤어코리아의 강윤선(45) 사장이다. 준오헤어는 현재 전국 38개 직영점에다 600여명의 정규 헤어 디자이너를 비롯해 1200여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최근에는 세계적 화장품 업체인 웰라 주관으로 선정한 ‘세계 10대 헤어 브랜드’에 선발돼 오는 10월 런던에서 열리는 대륙간 헤어쇼에서 87분동안 내년도 헤어트렌드를 발표한다.

강 사장은 사실 번듯한 학력(學歷)이 없다. 그가 야간 여상(女商)을 다닐 때였다. 직장을 마치고 동네 미장원을 방문했다. 어떤 아주머니 손님이 주인더러 “짐을 조금만 맡아달라”고 요구했으나 주인은 냉정하게 거절했다. 그때 강 사장은 ‘머리는 계속 자라므로 미장원엔 계속 갈 것이고 나 같으면 저런 손님에게 친절하게 대해 단골로 만들 텐데’라고 생각, 미용학원으로 달려갔다. 미용보조를 거쳐 1979년 서울 돈암동 성신여대 앞에다 19평짜리 첫 가게를 냈다. 미용 일을 하면서 만난 남편의 별명인 ‘준오’를 따서 준오헤어라고 가게 이름을 지었다. 하지만 그는 5년 만에 가위를 놓았다. 자신보다 훨씬 기술 좋은 후배들이 많았기 때문이란다. 대신 자신은 경영을 맡기로 했다.

강 사장은 1980년대 중반부터 사무실에 팩스와 복사기와 경리를 두고 미용실을 기업형으로 꾸려갔다. 1992년 이대점 1호점을 열면서부터 본격적인 성장세를 탔다. 그는 “1979년부터 지금까지 회사의 성장 그래프는 꾸준하게 상승 곡선을 그려왔다”고 설명했다. “무엇이든 어느날 갑자기 되는 건 없습니다. 매출도 하루 9000원부터 시작했지요. 불경기엔 손님이 커트만 하고 값 비싼 퍼머나 염색을 주저하긴 하지만 정성으로 맺어진 단골 손님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그의 말은 자신감이 넘쳤다.

사실 스스로 ‘푼수’라고 부를 정도로 그는 눈물도 많고 정(情)도 많고 말도 많다. 사춘기 소녀처럼 에너지가 넘쳐난다. 함께 있는 사람도 넘쳐나는 열정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그래서 주변에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 아침에 직원과 만나면 “어젯밤 술을 많이 마셔 아직도 어지럽다”고 웃으며말을 건네는 그다. 그런 서글서글한 성격으로 첫 가게부터 성신여대 학생들의 인기를 끌었고 그 여세를 지금까지 몰아왔다. “처음에는요, 좀 더운 것 같으면 아이스크림을 사드리고 너무 늦게 끝나면 집에까지 바래다 주었죠. 그렇게 하면서 단골 확보에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동네가게 수준이던 미용실을 오늘날과 같은 기업형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강 사장의 파격적인 직원교육이 있었다. 그는 대학을 나오지 않았지만 심리상담사와 카운슬러 자격증을 획득하는 등 자기계발에 주력했다. 직원에게도 학습과 교육의 중요성을 행동으로 실천하면서 가르쳐주었다. 현재 준오헤어의 경쟁력은 실력과 서비스 정신으로 무장한 헤어 디자이너들이다.

강 사장은 1992년 신촌에다 직원교육을 위한 ‘헤어 아카데미’를 설립, 국내외 유명 미용사를 초빙해 실습과정을 가르쳤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준오헤어에 입사하는 사원들은 2년6개월 동안 헤어 아카데미에서 미용기술은 물론, 대기업 연수원에서나 배울 법한 리더십이나 소비자심리학 등의 과목을 이수해야 한다. 미용학원 출신이나 대학에서 미용을 전공했다고 하여 면제되지 않는다. 우선 6학점을 이수해야 고객의 커트를 할 수 있고 20학점을 마쳐야 퍼머가 허용된다. 이렇게 총 30개월간 110학점을 이수해야 준오헤어의 정식 헤어 디자이너가 된다. 그제서야 가위 주머니를 허리춤에 찰 수 있고 일선에 배치된다. 헤어 아카데미의 교육과정을 돈으로 환산하면 2000만원에 육박한다. 물론 직원에게는 무료다. 최근엔 헤어 아카데미의 명성이 높아지자 강 사장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유료 프로그램 개설도 검토하고 있다.

헤어 아카데미를 통해 숱한 미용인재를 배출했기에 준오헤어는 ‘미용업계의 인재 사관학교’로 불린다. 그는 “내가 배운 게 적어서 그런지 교육에 대한 갈증이나 욕구가 심하다”면서 “어디에서든 준오헤어 출신은 똑똑하다는 얘기를 듣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매년 십여 명의 직원을 선발해 보름에서 한 달간 런던 비달사순 등에다 해외연수를 보내주고 있다. 이 중 3명은 정식유학을 다녀온 뒤 미용 관련학과의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준오헤어 출신 미용교수 20명을 채우는 게 목표라고 했다.

이렇게 연구개발에 집중한 덕분에 한국에서는 최초로, 동양에서는 두 번째로 세계최고의 헤어쇼라는 ‘런던 얼터너티브 헤어쇼’에 2년 연속 참석했다. 준오헤어 수내점의 원장겸 헤어디자이너인 박진현씨가 대표선수로 참가했다. 이렇게 직원교육에 앞장서다보니 당연히 직원 이직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

준오헤어의 헤어디자이너 중엔 억대 연봉자도 상당수다. 프리랜서처럼 오는 손님이 많을수록 인센티브도 올라간다. 강 사장은 앞으로 10년 이상 근무한 유능한 직원이 회사 측과 50 대 50의 파트너십 형태로 직영점을 개업할 수 있도록 도와줄 예정이다. 준오헤어 직원들은 수시로 강 사장에게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사장님, 물방울이 천년에 한 번씩 똑 떨어져 마을에 홍수가 날 때까지 사랑합니다.’ 주로 이런 식이다.

종업원부터 회사에 만족해야 손님도 만족하고, 그래야 진정한 발전이 있다는 것이 강윤선 사장의 지론이다. 올 1월 2일에 열린 시무식 때는 직원이 건국대 강당에 모여 만화 캐릭터 복장이나 치어리더 차림으로 장기자랑을 하면서 시무식을 치렀다. 그렇다고 사장과 직원이 구분이 없는 건 아니었다. 강 사장은 본사 장식판 안에 들어있는 전등 하나가 꺼져있는 것을 보고 “저렇게 해놓으면 직원의 마음이 흐리멍덩해지는 것 아닌가”라며 호통을 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그 직원의 어깨를 감싸 안아주는 것도 강 사장의 특기인 듯했다.

최홍섭 주간조선 기자(hschoi@chosun.com)